* 드림 성향 : 아이던 x 밀레시안 

* 약간 고어틱한 묘사 존재.

* (주의) 신체 훼손에 해당하는 부상 묘사 있음.

* 우울+다크함 주의.







 


 

 

걷는 것인지 제 몸을 끄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걸음이 이어졌다. 직직 끌리는 발걸음 아래로 점점이 붉은 꽃이 피었다. 아니, 꽃이라기엔 지나치게 면적이 넓다. 찢어진 옷깃 아래 보이는 살갗은 상처로 얼룩져 제 빛이 보이지 않았고 왼손으로 감싼 오른 어깨 아래는 눈이 아플 정도로 휑하니 비었다. 류트를 뜯기도 하고, 때로는 피아노를 쳤다가, 또 한 때는 무기를 들고 적을 베어 넘기던 팔을 잃은 밀레시안은 이멘 마하의 돌바닥에 쇠 냄새 진한 길을 그리며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Asphyxiation

w. 카이네시안 

 

 


시간이 멈춘 듯이 세상 전체가 잠들어 있는 시간. 새벽의 공기가 웅크린 이멘 마하에 깨어 있는 것은 그 곳을 밤낮없이 지키는 근위대장 뿐이었다. 평소보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사이 질질 끄는 걸음 소리에 아이던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시간에 누가, 무슨 일로. 낯선 걸음을 맞이하러 가야 할지 고민하던 차 저만치 보이는 인영이 있다. 마치 좀비처럼 바닥을 끄는 소리가 바늘처럼 뒷목을 긁어내렸다. 천천히 가까워진 그림자가 큰길의 가로등 아래 모습을 드러내었다.

 

……!”

 

머리 한 켠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생각을 애써 부정하고 있던 아이던은, 마치 누군가 머리를 거세게 후려치기라도 한 양 경악했다. 한쪽 팔이 없고, 피를 뚝뚝 흘리며, 제 몸 가누기도 힘든 듯이 비틀거리며 걸어오던 인영이 밀레시안일 줄은. 차라리 끈질기게 마을 안까지 들어온 포워르이기를 바랐다. 그것이 어느 문 근위병의 태만을 이르는 것일지라도. 차라리 포워르기이를. 혹은 어느 행려병자이기를, 하다 못해 어느 전투에서 다치고 온 또 다른 사람이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잔인하게도 눈앞에 나타난 현실에 아이던은 감히 고개를 돌리지도, 걸음을 물리지도, 그렇다고 앞서 달려가 밀레시안을 붙잡지도 못하였다. 그저 못 박힌 양 그 자리에 서서 부릅뜬 눈으로, 자신에게 걸어오는 밀레시안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다.

 

성 앞,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이 거리에 이토록 길고 숨막히는 시간이 걸릴 줄은 한 번도 몰랐었다. , , 천둥이 치는가 싶었던 소리는 귓가에서, 머릿속에서, 배 아래서, 온 몸에서 뛰는 자신의 심장소리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온 바닥을 진동시킬 것 같은 박동에 목이 탔다. 얼굴조차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인 채, 용케도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리며. 이제는 한 걸음 앞까지 다가온 밀레시안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 이던, .”

 

자신을 찾는 시선의 한쪽은 공허했다. 얼굴의 텅 빈 공간에서 터진 핏물이 흐르고 굳어 얼룩진 얼굴이 아이던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이던, . 다 쉬어 꺼져가는 목소리에 안도가 서렸다. 힘없이 눈을 감는 찢어진 입술 끝에 희미하게 걸린 것은 안도와 만족감이 뒤엉킨, 미소였다.

 

다행, 이에요.”

 

들리지도 않는 흐릿한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밀레시안의 몸이 꺼지듯 앞으로 쓰러졌다. 반사적으로 팔을 뻗은 아이반의 품으로 무너진다. 말도 안 되게 느린 속도로. 아까부터 모든 것이 느려 보이기만 했다. 귓가에 울리는 심장소리마저도. 마치 초침처럼, , , .

 

밀레시안 ㄴ…!?!”

 

다급히 그를 부르려던 목소리가 우뚝 끊겼다. 품 안으로 쏟아지듯 무너진 밀레시안의 몸이, 그의 팔뚝에 닿기 무섭게 부서져 내린 탓이었다. 마치 얇은 유리 조각이 깨어지듯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경악에 물들었던 아이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쏟아지지도 않은 조각을 찾듯 제 발치와 주변을 미친 듯이 두리번거리는 아이던의 등 뒤에 서늘한 목소리가 내렸다.

 

잡으려고 했어요?”

“!”

당신이? 나를?”

 

귓가를 후비는 목소리는 냉소가 섞여 놀라울 만치 차가웠다. 밀레시안을 받쳐 안으려 꿇었던 무릎을 펴며 돌아선 아이던의 앞에 조금 전 눈앞에서 쓰러지고 무너진 밀레시안이 서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말끔한 얼굴에 서린 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웃음이었으나 그 웃음에는 온기가 없다. 어쩌면 그의 등 뒤에 고고히 자리한 반신의 날개에서 쏟아진 빛이 그리 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대답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아이던의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온 밀레시안이 아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재미있네요. 정말로 나를 잡으려고 한 거에요?”

 

당신 같은, 사람이. 환한 웃음 아래 묻힌 조소가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대답 대신 아이던은 입술을 악물었으나 이번에도 역시, 그는 밀레시안으로부터 물러서지도, 다가서지도, 시선을 돌리지도 못하였다.

 

눈 앞에서 무너지는 내 시체마저 잡지 못했으면서. 나를 돕고 지키겠다고, 하는 거에요?”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질문하는 얼굴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미소가 아니었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무언가를 대하는 듯한. 어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은 듯한.

 

그것은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의 경멸 어린 미소였다.

 

 

 

*                 *              *

 

 

 

!”

 

짧은 기함과 함께 아이던은 튕기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잘 단련된 단단한 가슴이 거친 호흡에 빠르게 들썩였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뒷목에 브레이드를 풀어내린 머리가 끈적하니 달라붙었다.

 

하아.”

 

자신이 꿈에서 깨어났음을 천천히 자각한 아이던은 고개를 숙이며 양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아직도 눈꺼풀 아래서 그 모든 꿈속의 장면들이 어른거리는 것 같아 좀체 진정이 되지를 않는다. 무너지는 밀레시안의 몸. 피투성이가 된 얼굴. 입꼬리를 타고 퍼지는 안도감 섞인 힘없는 미소와, 팔 안에 하중이 채 느껴지기도 전에 부서지듯 사라지던 때의 감각. 그리고.

 

당신이? 나를?

당신 같은 사람이?

나를 구하겠다구요?

 

메아리치는 목소리에 아이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심호흡을 위해 깊게 들이마시는 호흡 끝이 여전히 가늘게 떨었다. 한 손으로 눈가를 짚은 아이던이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어딘가 높은 곳의.

자신을 바라보며 당신은 나를 지키지 못한다 선언하는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또 이 세계 어딘가를 종횡무진 누비며 세계를 다잡고 있을 밀레시안의 모습 위로 엉망으로 망가지고 찢겨진 밀레시안의 몸이 덧씌워진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등 뒤에서 밀레시안을 바라만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젠장.”

 

나직이 욕설을 내뱉으며 아이던은 꽉 주먹 쥔 손으로 침대를 내리쳤다.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무력감이 발끝부터 옭아매고 온 몸을 타고 올라와 목을 졸라대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른 듯한 답답함과 심장을 연신 때리는 묵직한 박동은 모두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이, 감히 저 밀레시안을 지키겠다 지껄이는 제 오만함이다. 그 모든 것에 짓눌리듯 숨이 막힌다. 아이던 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떠올리며 아이던은 눈을 감았다. 나는 무엇에 이토록 질식당하고 있는가. 당신인가. 아니면.

 

내가 당신에게 질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마도. 나를 이토록 짓누르고 숨막히게 하는 것은, 아마도, 당신을 향한, 나의.

 

 

이멘 마하에도 여름이 깊었다. 끈적한 공기가 허공에 맴도는 호수 내음에 느리게 가라앉고 있는 새벽이었다.

 

 

 

 

END.








-

샴님 헌정글(?)

밀레시안의 그림자에 시달리는 아이던의 고뇌 같은 것이 보고싶어서 낙서해보았다...

글 쓰다보니 급 졸려져서 뒤로 갈수록 음... 내용이 음... 퀄.. 음... ()

아무튼 그렇다고 합니다. (?)


Posted by ㅅ신 :